소론(小論)

기도

법광스님 2024. 2. 28. 19:38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기도
 

 
아침 공양 시간에 귤이 올라왔다. 함께 기도하던 신도 자제분이 대학 입시에 붙어 공양하셨다. 귤 색깔과 소식 덕분에 아침부터 마음이 밝았다. 우리 절에서 기도하면 소원성취 된다는 과대광고가 날까 조심스러웠지만 보람 있고 좋았다.
겨울에 법당은 참 춥다.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면 법당 안의 다기 물이 얼 정도이다. 그런 날은 기도를 한다기 보다는 의무적인 의식이 된다.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속도도 빨라지곤 한다. 같이 동참하는 신도분에게 이런 마음이 들킬까 눈치도 보인다. 이렇듯 기도 시간은 온전히 `나 자신이 준비가 되었는가`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기도를 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축원(祝願)을 할 때이다. 축원(祝願)은 말 그대로 `간절히 원하는 것을 비는 것`이다. 불교 의례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처음 기도를 할 때는 뜻도 모르고 혼자 축원을 하는 시간이 부담스러웠다. 특히 기도를 올린 신도분이 동참하는 날은 잘해야 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더 떨리곤 했다.
각자의 사연들과 무거운 발원들이 내 책임 같아 기도 중 훌쩍이는 소리에도 목이메곤 했다. 어른 스님들의 덤덤히 읽어나가시는 염불 소리가 부러웠다. 염불뿐만이 아니다. 삶에서 오는 파도 같은 감정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의연함이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흉내도 내보고 괜찮은 척 연기도 해 보지만 어설픈 모습이 티가 나기 마련이다.
남을 위한 축원이 쉬울 리가 있을까. 진정 남을 돕는다는 것은 나도 돕는 길이어야 한다. 오직 타인만을 위한다는 것은 성인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좋은 집이나 차, 비싼 옷, 좋은 직장, 배우자 등 다양한 조건들이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떠올려진다. 그런 조건을 추구하는 삶도 중요하다. 다만 추구하는 방향이 잘못되어 타인의 행복마저 빼앗는 경우가 문제다. 가능하다면 모두가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직장에서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종교에서나 가능하다.
그렇다면 자신의 현재를 담보로 미래나 내 생의 행복만을 추구할 것인가? 그것도 탐탁지 않다. 다만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잘 모른다. 마치 열심히 길을 가다가 정작 왜 출발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사실 행복해지는 방법은 단순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면 된다. 그러려면 온전히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되는데 그런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중요성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종교에서 제시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기도’이다. 기도는 꼭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행복도 빌 수 있다. 대게 기도문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말로 구성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의 크고 작은 잘못된 습관들을 알게 해 준다. 그만큼 기도는 무의미하게 치닫는 삶에 브레이크 역할을 해 준다.
대게 `불교` 하면 명상을 떠올리지만 처음 부터 권하지 않는다. 바쁜 현대인들에겐 가만히 앉는 것조차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대신 좋은 문구나 자신만의 응원의 글을 되뇌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를 들면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라는 말들을 스스로에게 해 주는 것이다. ‘나는 행복하다.’ 또는 ‘나는 건강하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등의 문구를 반복하다 보면 기도와 같은 효과가 있다.
 
의무적인 기도 시간을 곰곰이 되짚어 보니 이보다 유익한 일이 없다. 올해 들어 다시 개인 기도를 시작했다. 타성에 젖어 의무적으로 하는 기도 시간이 아닌 온전히 나만을 위해 만든 시간이다. 하루 30분에서 40분 정도의 시간은 어떤 일 있어도 나를 위해 기도한다.
기도를 할 때 가장 좋은 점은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꼭 종교적인 믿음만은 아니다. 인간으로 살면서 추구해야 할 정신적인 소양과 같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축원하는 일이 떳떳해지지 않을까 이렇게 배우고 노력하는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