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론(小論)

인생의 잠언-법구경을 읽고-

법광스님 2020. 11. 6. 20:41

 인생의 잠언, 법구경을 읽고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편입을 해서 학부 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짧지만 굵직한 시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는 얼씬도 못했다. 덕분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좋은 점도 있었지만 뭔가 아쉽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버스에 오른다. 가다가 아무 정류장에 내렸는데 낯선 도시다. 급히 지도를 편다. 지도 이름은 법구경이다. 법구경과의 만남은 이랬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목숨을 유지하고 사는 것 또한 어려우며

이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기도 어렵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것은 더욱 어렵다 (법구 182)

 

법구경은 부처님의 원음과 같은 말씀의 모음집이다. 장구한 역사와 같은 많은 사상, 역사, 경전들에게 치일때쯤 법구경 같은 단순함은 마음의 쉼을 준다.

꼭 이만때 쯤이면 심심찮게 자살 소식이 뉴스거리가 되곤 한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생을 마감했다. 유명 연예인의 죽음은 기사거리가 되지만 가족도 없이 외롭게 죽어간 이들의 죽음은 알 수도 없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도 참 많았다. 부처님법을 공부하는 복으로 배부른 고민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수행자로 사는 삶이 때론 좌표를 잃는 배처럼 흔들거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좋은 선지식과의 인연들이 나를 도왔다. 때론 교수님의 말씀속에, 책 속에 있기도 했다. 부처님을 직접 뵐 수는 없어도 아직 문자로 나마 접할 수 있다는게 천만 다행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어리석다고 말한다면

그는 이미 지혜로운 사람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말한다면

그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법구 63)

 

 

자신이 어리석다고 안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조금이라도 누가 잔소리라도 할라 치면 심통부터 난다. 그나마 출가를 하고 시비와 멀리 ᄄᅠᆯ어진 생활에 익숙해지니 화를 내는 일이 많이 줄었지만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습관들이 가끔 무섭다. 이번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카메라로 찍힌 내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랬다. 표정, 자세, 눈빛.. 모두 내가 생각하는 나와 너무 달랐다. 마음 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어리석은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은연중에 내 표정 속엔 이만하면 난 괜찮은 수행자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가관이다 정말..

진정한 지혜가 생겨서 잘 익은 벼처럼, 떨어지는 낙엽처럼 한없이 숙이고 낮은 곳에서도 아름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천 마디의 말을 암송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뜻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단 한마디의 말이라도 제대로 이해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만 못하다 (법구 100)

 

옳고 그름을 잘 아는 것이 참 어렵다. 이럴 땐 부처님이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는 나날도 많았다. 경전의 말씀과 현실이 다를 때 오는 괴리감은

화병이 되기도 하고 몸이 아프기도 했다. 법당에서 기도 집전하다가 울컥해서 곤란한 적도 많았다. 선뜻 물을 수도 없었고 쉽게 답을 낼 수도 없었다.

이 공부가 정말 맞는건가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답을 찾기 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가 사는 오늘 하루, 지금 내가 해야 할 일 등에 집중하게 되니 불안하고 우울했던 마음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꿈과 같은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인연 닿는 것들에 그저 충실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니 위로가 됐다. 그렇게 벌써 졸업이다

 

계율을 단 이슬의 도()로 삼고

방일을 죽음의 지름길로 삼는다

탐내지 않으면 곧 죽지 않고

도를 잃으면 스스로를 잃는 것이다(법구 21)

 

가끔 마음이 들뜰 때가 있다. 부처님은 이것을 불에 탄 재가 흩날리는 것에 비유하였다. 몸이 많이 피곤하거나 망상에 사로잡힐 때 혹은 두렵거나 불안할 때이다. 이런 때는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조용히 처소에 머물거나 왜 그런가 되짚어 본다 대부분 균형이 깨지거나 한쪽으로 마음을 쏟고 있다.

번뇌는 꽤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쉽게 동요되거나 감정에 사로잡히기 쉽기 때문이다.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은데 자칫 사고가 나기 쉽다. 가능하면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학교나 대중이 사는 삶에서 매 순간 안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럴 때 짚어보는 가장 좋은 기준은 `계율`이다. 부처님의 계율을 기준으로 행동을 조절해나가면 이리저리 원숭이처럼 날뛰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

가끔 학생들과 공부하다 보면 기준 없이 행동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고정관념은 자신을 어리석게 만들지만 자신을 지켜주는 적당한 기준은 마음을 안정감 있게 만들어 준다. 간단하지만 규칙적으로 지킬 수 있는 작은 규칙 혹은 습관들이 나의 삶을 만들어 간다. 자꾸 흐트러지고 들뜨는 마음에 단 이슬과 같은 계율을 잘 지켜나가야겠다. 그것이 나의 오늘을 만들고 미래를 만든다.

 

매년 같은 계절이지만 하루도 같지 않은 나날이다. 이번 법구경하고의 만남도 새삼 새롭다. 부처님의 말씀을 이렇게 글자로나마 만날 수 있음을 감사한다.

학부를 잘 마치고 내년에 가는 대학원에서 내가 모르는 부처님을 더 깊이 잘 알 수 있기를 발원한다. 그리고 어느 새 그분을 닮아가는 내 자신을 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올 가을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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