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론(小論)

수행자의 기준

법광스님 2020. 7. 15. 08:29

수행자의 기준

 

 2020년은 시작부터 달랐다. 뜻하지 않는 돌림병으로 세상이 온통 마비 상태였다. 지금도 백신이 나오지 않는 이상 주의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한편에선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무리 일 것이라 했다. 도통 생각지 못한 일이라 믿기지 않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올해가 벌써 반이나 지났다.

 

 붓다의 시점의 세상은 원래 고통의 세계이다. 탐욕과 분노,어리석음등 마음의 번뇌들이 사라지지 않은 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늘 `고통`을 안고 살아갈 뿐이다그 안에서 `행복`을 얘기하는 것은 거짓말 같다. 오히려 아프다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렇다고 출가한 수행자들이 다들 비관주의자인가? 딱히 그렇지도 않다. 출가자들의 성격도 가지 각색 인데다 완전한 열반을 얻지 못하는 한 일반 범부와 같다. 다만 `어떤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는가`가 출가자와 재가자의 삶의 방향을 가를 뿐이다. 물론 잘못된 선입견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아예 기준이 없어 삶의 방향을 잃을 수도 있다. 누구나 사람은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가정, 학교, 사회라는 곳에서 삶의 기준에 대해 배우는데 이것은 수행자의 삶에서도 중요하다.

 

 수행자의 삶은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할까? 부처님의 시선으로 본 사성제, 팔정도 등의 기준은 이론상으론 명확하다. 그러나 초보자의 경우 이 기준을 삶에 적용시키는 능력이 부족해 머리 따로 가슴 따로 사는 일이 빈번하다. 또한 시대에 따라 출가자의 문화도 많이 변화했다. 단적인 예로 출가자의 연령이 높아졌고 시대에 따른 생활 패턴도 많이 달라졌다. 이렇다 보니 옛날의 기준만을 가지고 지금의 삶을 사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물론 지금 시대에 출가자의 기준도 부처님 말씀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삶에 있어서의 방향은 이 시대를 사는 수행자들의 몫이다. 형식과 외형을 갖추는 것도 도움이 되긴 하나 마음이 갖춰지지 않으면 금방 티가 난다. 어떻게 보면 `치유`는 재가자보단 출가자가 시급하지 않을까 한다.

 

 이쯤 되면 출가자의 삶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맞다. 제대로 살려면 만만치 않다. 이 삶은 순행보다는 역행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가치관이 무너지는 순간도 있었다. 어설프게 흉내 내다가 호되게 진실과 맞딱드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매 순간 전쟁터에 나간 전사처럼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느 정도 타협하고 사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전문용어로 눈치껏 살아야 하는 것이다. 눈치가 있으면 `절집에서도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는 절집 속담이 있다. 구하기 어려운 새우젓을 얻는다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맨날 눈치 보는 삶도 지친다. 그러다 보니 새내기 출가자들을 만나면 극과 극이다.

 

 그렇다면 나의 출가자의 기준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선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출가자의 선함은 해탈,열반에 도움 되는 것인가의 여부에 달렸다. 만약 지향하는 방향이 해탈 열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세간에서는 훌륭하다고 해도 `선함`이라고 하지 않는다. 수행자의 삶은 그렇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스스로 너무 높은 선함을 목표로 해  비관하지 않는 것이다. 터무니없이 높은 기준을 잡아 늘 모자른 사람이 되지 않는다. 또 자기 기준 높은 사람은 남에 대한 기준도 높아 함부로 선입견을 가지기 쉽다. 항상 이점도 유의해야 한다.

 

 벌써 올해도 반이 지났다. 자연은 한창 여름을 알리는 갖가지 형색을 뽐낸다. 학교에서 정신없이 지내다 문득 멈췄을 때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돌아본다. 혹여 그렇게 싫어했던 모습이 내겐 없는지, 애를 쓰고 달리는 이 방향이 맞는 건지 확인하고 점검해 보곤 한다. 이 공부는 분명 상을 없애고 분별을 없애야 하지만 그런 경지는 정말 쉽지 않다. 다만 이왕 없어지지 않는 기준을 좋은 방향으로 돌리는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항상 묻고 싶다. 그런 눈밝은 이가 그립다.

 

 올해가 무사히 지나길 기원한다봄같은 반가운 소식이 오길 기도한다.

 

2020.7.15